제 5화 - 연구소 대 숲




제 5화
-
연구소 대 숲


알파-17 바이러스가 생기기보다 훨씬 오래 전이었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10년 전. 그래, 그쯤이었다. 훨씬 더 젊은 모습인, 흰머리도 주름도 없는 연구소장은 연구소장이 아니었다. 그는 막 고위 계급 연구원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연구원인데다 위험천만한 숲 탐사조의 일원이었다.

“이 탐사 차량 얼마나 쓴 거야? 이거 브레이크가 잘 안 밟히는데?”

“최 연구원님이 브레이크를 못 찾는 게 아닐까요? 한 번 보세요.”

그는 뒷좌석에서 꾸벅꾸벅 졸며 브레이크를 찾으려 몸을 숙이는 둘을 태연히 보았다. 탐사 차량의 속도는 가속도가 붙어 점점 빨라졌고, 숲의 나무들은 더 촘촘해졌다.

위험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부주의와 졸음에 의해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다. 정신이 번쩍 든 건 몸을 구부린 둘이 실수로 가속 버튼을 눌렀을 때였다. 갑자기 빨라진 차량은 앞에 서 있던 무언가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꺄아악!”

콰아아앙! 커다란 충돌과 함께, 구부린 자세로 앉아 있던 앞좌석의 둘이 튕겨나갔다. 그러나 안전벨트를 한 연구소장은 작은 타박상을 입었을 뿐 문제는 없었다. 연구소장은 잠이 확 달아나선 튕겨져 나간 둘을 향해 달려갔다.

“으‥‥ 으으…”

“아- 아아.. 선배님들!”

둘은 이미 과다 출혈로 축 늘어져 있었다. 연구소장은 벌벌 떨며 부딪힌 무언가를 보려 탐사 차량 앞으로 달려갔다. 차량 앞에는 우뚝 솟은 나무와 함께 수인 두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게 대체-”

“내 아기‥‥ 아‥ 안 돼..”

여자건 남자건 둘 다 돋아난 뾰족한 검은 뿔을 보니 확실히 산양 부부였다. 연구소장은 우연찮게 둘이 꽉 감싸고 있는 작은 보따리 하나를 발견했다. 태어난 지 일 개월도 채 되지 않은 듯한 새파랗게 어린 아기였다. 아기는 그녀를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이 축 늘어지자 엉엉 울기 시작했다.

“으아앙! 으앙!”

우렁찬 목소리에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피 한 방울이 길게 묻어난 아기의 볼을 닦으며, 연구소장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기는 뜨겁다는 걸 깨달았다. 아기의 손이 문득 연구소장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으에엥-”

참 따뜻하고 온화하기까지 한 생명의 온기였다. 항상 딱딱하고 차갑기만 했던 연구소장에게 불어넣는 아기의 온기였다. 연구소장은 이미 이 아기를 데려가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뒤 아기를 끌어안았다. 아기는 연구소장에게 팔을 휘저으며 시끄럽게 빽빽 울댔다. 시끄러운 산양 아기라. 연구소장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화양. 이제부터 네 이름은 화양이다. 시끄러울 화에 양 양(譁羊). 같이 가자꾸나.”

아기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뭐가 그리 안심되는지 눈물을 뚝 그쳤다. 다 부서진 차량과 시체로 차갑게 식은 여럿을 두고, 연구소장은 중얼거렸다.

“네가 나에게 온기를 불어넣어줬듯이, 나도 이 위험하고 본능뿐인 숲에서 널 구원해주마.”

그로부터 몇 년 뒤, 연구소장은 드디어 연구소장이라는 직급을 얻고 일명 억제제, 화양에게 먹일 약을 개발했다. 어쩔 수 없었다. 화양의 머리에는 수시로 뿔이 자라나려 했고, 가끔씩 초인적인 힘이 생겨 산을 타고 바위를 오르는 현상을 보였으니까.

그러나 연구소장과 그의 아내에게는 자녀가 생기지 않았기에 둘에게는 화양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딸이었다. 둘은 진심으로 화양을 원했고, 화양도 따스하고 작은 손으로 연구소장과 엄마의 손을 꽉 붙잡았다.

“이화양. 약을 먹지 않으면 넌 아플 거야. 죽을 수도 있어.”

그렇기에 그녀를 속였고,

“이렇게 낳아서 미안하구나. 내 딸.”

또 속여서,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그냥 약이 좀 써서….”

마침내 화양이 완전히 그에게 기대게 만들었다.

“그래. 그래… 영원하지 않겠지. 언젠가는 다 끝날 거야‥‥”

절벽과 절벽 사이 아슬아슬하게 놓인 출렁다리였다. 결국 다 해질 대로 해져 깨질 게 분명한 부녀 지간 사이였다. 그러나 그는 화양을 놓을 수 없었다. 분명히 어린 애를 속이는, 아주 비열하고 천박한 짓임에도 거짓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 알아채고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게 분명해도 떠나보낼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그녀에게 들킬 지도 모른다는 겁에 휩싸여 점점 화양과 멀어져도 포기할 수 없었다.

“여보, 몸이 이상해요. 아파서, 아파서 미칠 것 같아요..”

매일 밤마다 죽을 고비를 넘기는 아내인데, 화양마저 잃으면 남는 건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열세 살이었고, 충분히 비밀을 알아챌 만큼 성장해 있었다. 어쩌면 류현 말대로 놓아버리는 게 옳은 선택일지 몰랐다.

애초에 화양에게 억제제를 먹인 그날부터, 아니, 자그마한 아기일 때의 화양을 데려온 그날부터, 아니, 생명의 숲 연구소에 신입 연구원으로 발을 디딘 그날부터 모든 게 엇나가고 있었다. 숲도, 숲 생명체들도, 화양도, 그의 아내도. 모든 게 다 부질없었다.

“결국 이렇게 끝을 맺는 구나.”

한참 과거 회상에 젖어 있던 때, 바로 앞에서 총을 장전하던 군사 한 명이 쓰러졌다.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연구소장은 수인들과 연구소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걸 머지않아 깨달았다.

“크읏-”

어디선가 주먹이 날아왔다. 간신히 주먹을 피해낸 연구소장이 뒤를 돌아 태양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연구소장 대 수인들의 왕. 모두가 서로 싸우면서도 가장 궁금해 했던 대결 구도였다. 연구소장은 강태양과 맞먹을 힘도, 초능력도 없었지만 가소롭다는 듯 픽 웃었다.

“왕 노릇은 재미있나? 모두가 공존하며 지내야 할 숲이, 영토가 분리되고 왕과 신하가 생긴다는 게 멍청할 노릇이군.”

“닥쳐라! 숲을 멋대로 침공해 수인들을 강제 포획하고 실험한 게 누구더냐! 바로 네놈들 같은 순 이기적인 것들이었다. 인간들만 없었어도 숲은 이렇게 변하지 않았다!”

태양은 말을 끝내고 바로 주먹을 연구소장에게 날렸다. 연구소장은 더딘 몸을 이끌고 두 손에 꽉 쥔 이상한 모양의 총을 가동했다. 위이잉- 기계소리가 나며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붉은색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발을 굳게 내딛어 서 있던 태양은 긴 발자국과 함께 멀리 미끄러졌다. 손에 폭발로 인해 진한 멍이 생겼다.

“내가 고작 그딴 허접한 무기에 굴복할 것 같느냐!”

와아아- 탄성이 흘러나오며 다시 힘 대 힘 구도가 형성될 뻔 했으나, 누군가의 비명이 그것을 막았다.

“그만해!”

거의 모든 수인들과 연구소가 뒤를 돌아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검은 뿔이 자라나고 있는 헝클어진 머리의 한 소녀에 닿았다.

“이화양.”

화양은 연구소장의 부름을 애써 무시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피로 칠갑이 되어 서로 싸우고 있는 연구원들과 수인들. 한때는 멋지게 솟아올라 있던 다 무너져가는 나무들과 매캐한 매연.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숲이, 전부 그녀 탓이라며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공격해!”

연구소장과 같은 편이라는 걸 안 태양의 부하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화양은 쉽사리 지지 않았다. 근육이 솟아오르는 발은 높게 치켜들어졌고, 매서운 눈초리는 공격하기도 전에 적군을 압살했다. 어떤 종족이든 체급이 무엇이든 간에 화양과 맞먹는 수인은 없었다. 한순간에 축 늘어진 부하들을 가뿐히 넘은 화양은 연구소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까지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약의 부작용으로 제 두 다리와 머리가 찢어질 때? 세월이 흘러도 약의 여파 때문에 제가 늙지 않을 때? 약이 말을 듣지 않아 수인으로 진화할 때?”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이냐.”

“……나도 모르겠어요. 상황이 흘러가는 방향은커녕 내 자신도 모르겠다고요. 다- 다 엉망으로 변했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인들과 연구원들의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화양은 무기를 재가동하는 연구소장과 주먹을 매만지는 태양을 중심으로 방황했다.

수인들은 강하고 초인적이었다. 칼과 공격을 피하고, 심지어 총까지 피하는 빠른 민첩을 보유한 수인들도 더러 있었으며 서로 협력하는 수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달이라고, 몇몇 강력한 무기를 보유한 연구원들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빠르게 피하고, 날아올라 장거리로 공격을 가하고, 나무를 타고 오른다 한들 베껴 만든 기술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삽시간에 수인들의 절반은 다쳐 움직이지 못하거나 그물망에 갇혀 버둥거리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아아악! 엄마!”

“크으윽- 아아…”

화양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는 아직까지 신경전을 벌이는 연구소장의 목덜미를 팍 잡고 외쳤다.

“그만해요! 수인들이, 숲이… 죽고 있다고요. 내가‥ 내가 가면 되잖아요! 중심부로 가서 내가 치료제를 구해 오면 되잖아요.”

연구소장의 표정에 감정이 교차했다. 화양의 일그러진 얼굴에 죄책감을 느껴 씁쓸해졌다가, 이제는 결정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모르겠는 딜레마에 갇혀 일그러졌다. 연구원 몇 명이 연구소장을 대신해 목숨을 잃는 와중 연구소장은 눈을 감고 머릿속을 정리했다.

“널 잃기 두렵다.”

“…저도 절 잃기 싫은 걸요. 하지만 이게 제 길이에요.”

연구소장의 고개가 옅게나마 끄덕였다. 화양은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리안과 함께 연구소장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게 집중해라!”

다시 주먹질을 해대며 연구소장을 죽일 기세로 노려보는 태양을 두고, 연구소장은 다시 무기를 가동했다. 퍼엉- 펑! 폭탄이 폭죽처럼 터졌고 불씨가 벚꽃처럼 흩날렸다. 태양은 점점 끝나가는 싸움에 미련을 두고 이빨을 까드득 갈았다.

“미천한 것들.. 어떻게 저리 당당하게 숲의 땅을 밟고 있는 게냐!”

우드드- 드득-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에 균열이 갔다. 연구소장의 무기는 아직 몇 번이고 더 쓸 수 있었다. 태양은 한에 젖어 연구소장에게 고함을 내질렀다.

“네놈이 내 모든 행복을 망가뜨렸어! 내 집, 내 아내‥‥ 그리고 그것 또한 모자랐던 건지 하나뿐인 내 아들까지 잡아갔지!”

“그 날은 죄다 사고였어! 그 여자는 두려워 뒷걸음질 쳐 혼자 죽은 거다!”

연구소장의 머릿속에 뒷걸음질 치다 절벽에 떨어져 죽은 여성이 상기되었다. 그러나 연구소장의 기억에는 태양이 말한 남자아이는 없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는 연구소장에 태양은 더욱 격분했다.

“시치미 떼지 마라!”

이제는 힘이 다해 손가락 끝만 간신히 옮길 수 있는 태양이 외쳤다. 연구소장이 아니라 외치며 오해를 풀려던 때, 태양이 그의 말을 또 끊고 아들의 이름을 길게 외쳤다.

“……뭐?”

그저 평범한 이름이었으나, 누군가에게는 또 달랐다. 아까부터 그물망에 갇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싸움구경 하던 류현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양은 쉰 목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렀다.

“뭐? 어이, 아저씨! 빨리 이거 풀어!”

연구소장은 그가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아 갈고리로 포획망을 끊어주었다. 류현은 나무들을 타고 올라 어딘가로 멀리 사라졌다. 마지막 그가 외친 말 한마디가 둘의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기다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기다려!”

*
*
*

연구소장은 눈을 마주치기를 간절히 바라는 태양을 애써 피하며 먼 산을 응시했다. 수풀들 사이로 중심부 산이 우뚝 솟아올라 있었다. 지금쯤 암벽을 오르고 있을 화양이 제발 무사하기를 바라며, 연구소장은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깊이 고민했다.

‘그저 제발 무사하길.’

깊은 생각에 빠져들어 주변 소리는 전부 무시하고 있던 때였다. 태양의 눈물 섞인 놀라운 목소리가 그를 고민에서 깨웠다.

“아… 아들..! 네가 어떻게‥”

황금빛 눈동자에 복숭아처럼 붉은 볼기짝, 강렬한 주황색 머리색. 몸집을 제외하면 쌍둥이라 해도 믿을 쏙 빼닮은 아빠와 아들이, 한쪽은 울고 한쪽은 영문을 모르겠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아‥ 아빠. 울지 마세요.”

“혜성아, 강혜성.. 내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류현은 세상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태양은 부드러운 손길로 미소를 머금고 있는 혜성의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생채기가 있는 가느다란 팔을 닦아주고, 맨발인 발에 자신의 신발을 신겨주었다. 왕좌에 앉아 왕 노릇을 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대체 누가 널 이렇게 다치게 만들었느냐? 응?”

“그냥 덩굴 미로에 떨어져 며칠 있었을 뿐인걸요.”

“그럼 누가 널 살려줬느냐? 이 형이냐?”

태양은 혜성이 모든 걸 설명하기 전에 류현의 손을 턱 붙잡고 감사를 표하기 시작했다. 혜성은 흥분한 아버지의 손을 그러쥐며 흥분을 가라앉히도록 그를 진정시켰다.

“이화양이라는 어떤 인간 누나‥‥ 아니, 산양 수인? 뭐라고 해야 하지.. 음.. 저쪽 연구소장 딸이 절 개코 원숭이 떼에서 구했어요.”

연구소장 딸이라는 말에 태양은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돌아보았다. 매서운 눈초리였음에도 이상하게 고마움과 슬픔이 묻어나 있었다. 혜성은 그런 아버지를 꽉 끌어안으며 옆에서 휘파람을 부는 류현에게 속삭였다.

“도한 형은 화양 누나랑 같이 중심부로 떠났어.”

“그래? 우리로써는 할 일이 없네.”

류현은 기분 탓인지 새와 그 새를 타고 있는 소녀가 날아가고 있는 것 같은 중심부 산을 힐끗 보았다. 그래도 화양이 진화한 수인 종류가 산양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산양이라면 신체적 능력도 뛰어나고, 산꼭대기에 오르는 데 엄청난 이점이 있는 동물이니까.

“무사하길 건투를 빈다, 이화양.”


* * *


까악- 까악- 도한이 그녀가 걱정되어 계속해서 울음소리를 냈다. 화양은 그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렇게나 아름답던 나무의 이파리들은 이제 하늘을 보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

문득 어디선가 바람과 무언가가 충돌하는 소리가 겹쳐 들렸다. 처음에는 도한이 빠르게 날아서 들리는 잡음인 것 같아 그러려니 했었는데, 소리는 시끄럽게 충돌하며 가까워졌다. 화양은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꼈다.

“도한아. 우리 빨리 가야 돼. 뭔가가 쫓아오고 있…”

피빗-! 콰악! 화양의 말이 끝나려던 찰나, 빠르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날아와 둘이 막 지나치던 바로 뒤 나무에 박혔다. 1초도 안 되는 순간이었다. 위협이기에는 너무 정확하게 날아온 화살이었다.

“꺄아악!”

화양은 소리를 지르며 두 팔로 머리를 감쌌고, 도한은 두려움에 몸을 확 기울였다. 화양은 머리에서 팔을 떼어놓질 않고 고개를 돌렸다.

“쳇… 놓쳤군.”

까마귀 수인들이 거대 까마귀의 등에 타 있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화양과 마주치자마자 등이 오싹해졌다. 그녀는 도한에게 정신 차리라고, 더 빨리 날라고 외치며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려 등을 구부렸다.

“으윽‥ 아아- 제발!”

화살은 끊임없이 날아왔다. 도한의 훌륭한 비행 솜씨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거센 비바람 때문에 대부분의 화살은 피했긴 했다. 문제는 대체 끝이 있긴 한 건지 모를 정도로 지속적이게 날아오는 화살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덧 도한은 아래에 안개가 드리운 암벽 쪽으로 날아오르려 했다.

“잠깐만, 이거 좀 줍자...!”

화양은 근처에 있는 돌들을 모조리 품에 끌어안았다. 마지막으로 화양이 주은 돌의 위치에 화살이 날아오자 은도한은 낭떠러지로 날아올랐다.

화살은 계속 날아왔지만 화양은 지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가짐한 후 한가득 끌어안은 돌들을 쥐었다. 영문을 모르겠는 행동에 까마귀 수인이 잠시 활시위를 느슨하게 놓았고, 화양은 그 때를 이용했다. 그녀는 손에 쥔 돌을 야구공 던지듯이 수인에게 던졌다.

“큿… 고작 그딴 돌덩어리에‥…”

손쉽게 돌을 피한 수인이 비웃으며 입을 열려 했으나, 화양은 말할 틈도 주지를 않고 계속해서 돌을 던졌다. 하나 둘 끌어안은 돌들이 대부분 빗나갔다. 화양은 희망을 품으며 마지막 남은 돌을 던졌다.

“크흑!”

돌은 까마귀 수인이 등에 진 화살 통에 명중했다. 화살과 화살 통은 마치 화살 날아가듯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까마귀 수인이 당황해 초조하게 눈동자를 흔들었다. 수인이 굳게 쥔 마지막 남은 화살이 활시위에서 튕겨져 나왔다.

“키익!”

“도한아!”

화살은 도한의 몸통 부분에 꽂혔다. 그 이후로 무기가 더 이상 남지 않은 까마귀 무리는 돌연 사라졌다. 까마귀 무리도 사라지고, 점점 중심부 산에 가까워지고 있어 화양은 이쯤 도한이 날기를 그만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한은 화양의 생각과는 반대로 꾸준히 날았다.

날아오르는 각도가 점점 꺾여 높게 치솟았다. 화양은 거의 공중에서 도한한테 매달리며 산봉우리만을 바라보았다. 눈에 온 힘을 쏟아부어 산봉우리를 보니 바위들과 암벽들이 보였다. 저것들이라면 조금은 자신 있었다. 순간 거대한 바람과 빗방울이 화양과 도한에게 쏟아졌다.

“읏- 아아?”

순간 몸을 부드럽게 간질이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 화양의 뇌 속 깊이 침투했다. 기운은 산봉우리에서 엄청난 양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에너지와 기운에, 화양은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위화감만 느낀 화양과는 달리 갑자기 도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도한아, 괜찮아?”

화양은 급히 도한의 얼굴부터 확인했다. 초롱초롱하던 눈은 생기를 잃었고 날개는 벌벌 떨리는 걸 모자라 이상한 모양으로 구부러졌다. 그는 위로 날아오르다 산 중턱에서 갑자기 미끄러져 날기를 그만두었다.

“읏.. 뭐야? 어디 아파?”

“이상한…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 산 중턱을 넘어설 때 갑자기 느껴졌어. 도저히 날아오를 수 없을 그런 강력한 기운이 나를 막고 있었다고. 미안하지만‥‥”

어느새 독수리에서 인간으로 변한 도한이 화양과 비장한 눈빛으로 눈을 맞추었다. 피가 흘러나오는 왼쪽 날개를 꽉 잡으며, 도한은 의미심장하게 경고했다.

“이제부터는 네가 혼자 산을 올라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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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12-13 21:26 | 조회 : 402 목록
작가의 말
SoEy_10

개인 사정이 생겨 조금 늦었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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