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초심으로 (3)

제로 거리에서 분출된 연푸른 아지랑이.... 발현 순간, 그 거대함은 두사람을 휘감는다.

이전 두차례의 폭발과 같은, 아니 그보다 훨씬 거대한 폭발이었다. 장대한 연기가 일며 흙먼지가 휘날리던 전과 다르게, 이번은 푸르고 검은, 이질적인 빛깔이 솟아오르며 일대를 감추었다. 더구나, 훨씬 커진 폭발음은 귀를 막은 것과 상관 없이 온몸을 통하여 흘러들어왔고, 배가 된 충격은 천장에서 약간의 부스러기가 떨어져내릴 정도로 거셌다.

빈은 그런 무모한 공격에 잠시 눈을 찌푸렸으나, 이브엔의 공격과 동시에, 검을 더욱 꽉 붙잡았다. 더이상의 폭발은 몸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은 밀려났다. 마치 단단한 벽에 부딪힌 것처럼, 저항할 사이도 없이 빈은 공중에 떠올라 뒤로 날아갔다.

심각한 압력 차이로 발생한 바람은, 그렇게 공간을 한차례 휩쓸다가 이내 종적을 감추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고요한 적막이 가라앉고, 얼마지나지 않아 시야가 돌아온다.

빈은 휑한 공간의 그림이 돌아오고서야 이마를 짚으며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휘청거린다. 하지만, 날려진 충격에 잔상처가 쓸렸을 뿐 다른 내상은 없는듯 했다.

빈은 그대로 일어나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의 검과, 그보다 훨씬 멀리 쓰러져있는 검은 옷의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빈은 망설임 없이 그에게로 달려갔다.

이브엔의 모습은, 의외로 멀쩡했다. 아니, 전신이 검은 의상으로 가려져있어 내부 상태는 모르겠지만, 겉모습은 그저 흙먼지만 뒤집어썼을 뿐, 찢어지거나 상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오히려 멀리 있던 빈의 상태가 더욱 심각해보일 정도였다. 뭐, 대부분은 사내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서 생긴 상처였지만....

어찌되었건, 보다 원활한 호흡을 위해 빈은 이브엔의 목부분을 내려주었고, 몇차례 이름을 불러보아도 깨어나지 않자 어깨를 붙잡은채 천천히 흔들었다.

그때, 이브엔이 거친 기침을 하며 한차례 피를 토했다.

"그만.... 죽일 셈이냐......"

작은 한마디와 함께, 돌연 흩뿌려지는 대량의 피를 보며 빈은 그의 곁에 주저앉았다. 역시, 그 정도의 충격을 받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피.... 내상이 심해. 그런 무모한 공격을 하니까......"

창백하게 변한 이브엔을 바라보면서 빈이 이렇게 말했으나, 이브엔은 그런 그녀의 말을 끊듯 짧게 받았다.

"니가 흔들어놨잖아...."

"그건......"

빈은 찔리는 것이 있는듯 순간 말을 잇지 못했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농담하는 걸 보면 생각 만큼 아프지는 않나 봐?"

"농담이라니...."

이브엔은 잠시 동안 숨을 고르다가,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전혀 농담이 아니다. 속은 정말 뒤집어진듯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피는 호흡이 불안정해지면 쉴새없이 뿜어져나왔다. 덕분에 출혈에 의한 피해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이브엔은 공격 당시, 검기 스킬 < 세버 슬라이시스 > 를 마치자마자 다시 한번 마나를 끌어모아 검 밖으로 분출시켰다. 100 레벨에 도달하면 기본적으로 배우는 단순한 마나 운용에 불과한 스킬이었지만, 이브엔은 남아있는 모든 마나를 자신의 검으로 쏟아보냈다. 그리고, 형태가 잡혀있지 않은채 넘실거리던 마나는 이내 거대한 검과 같은 형태를 갖추어 이어진 폭발로부터 이브엔을 보호했다.

하지만, 공격에 의한 마나 손실이 너무 컸던지, 연푸른 마나의 검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깨어져버렸다. 그 후, 폭발에 휘말린 이브엔은 순식간에 뒤로 날아갔고, 마나에 의한 반발력으로 인해 더욱 심한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뭐, 마나 운용을 하지 않았다면 이미 한참 전에 강제 로그아웃이 되었겠지만....

이브엔은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움직임 하나하나에 따르는 고통으로 결국 포기한채 물었다.

"그 남자는.... 어떻게 됐지?...."

이브엔의 말에, 그제서야 깨달은듯 빈은 다시 한차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저 앞, 폭발의 장소로부터 꽤나 떨어진 문과 가까운 위치에서 사람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소멸하진 않았어."

하긴, 그럴 터였다. 폭발 당시, 흘러나온 빛깔은 자신의 연푸른 마나와 검은 무언가. 아무리 제로 거리에서의 공격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의 실력자라면 검은 흑기를 이용해 충격을 최소화 시켰을 것이다.

이브엔이 다시 물었다.

"움직임은....?"

"너랑 같아."

너랑 같다니.... 이브엔으로써는 그냥 넘기기 힘든 말이었으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못 들은척 흘려넘겼다.

"그럼...."

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틈에, 끝을 봐야겠지...."

빈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일으켰다. 멀지 않은 서편으로 몇걸음, 머지않아 이브엔과 함께 발견했던 자신의 검을 집었고, 이내 쓰러져있는 사내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끝을 본다?.... 크크크...."

처음부터 정신을 잃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방금 전 정신을 차린 것인지, 사내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몸은 두사람과 마찬가지로 피해가 적지 않은듯 휘청거렸으나, 눈에 서린 분노 만큼은 이전보다 한층 거대해져 있었다.

"그래.... 처음부터 이래야 했어.... 전부...."

사내는 여전히 비릿한 웃음을 흘려대며 이렇게 말했고, 잠시 후 들릴듯 말듯한 작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죽인다......"

그 한마디와 함께, 사내는 품에서 조그마한 무언가를 꺼내었다. 성인 손가락의 절반 만한 크기로, 진득한 붉은빛이 투명하게 반짝인다. 아마 보석 비슷한 광물인듯 했다.

그 특유의 반짝임을 눈에 담은 빈은 안색이 일순 좋지 않게 변했으나, 그것에 상관없이 사내는 꺼내든 보석을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삐죽 튀어나온 보석을 깨물며 절반으로 갈랐다.

동시에, 사내의 기운이 다시 한번 폭발하듯 솟아올랐다.

불과 수초 전만해도 이브엔과 같은 상황인듯 사내의 몸을 감싸던 흑기는 약간의 불과했지만, 붉은 보석을 깨물어 흡수하자, 그에 답하듯 흑기의 양은 마치 광역 기술을 시전했을 당시의 사내처럼 돌아와있었다. 물론, 폭발로 인해 생긴 잔상처 역시 모두 회복되어 있었다.

사내가 붉은 보석을 꺼내는 모습부터,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회복하는 상황까지 모두 지켜본 빈은 이내 입술을 깨물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네인 스펠......"

그 불길한 이름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누가 지었는지, 같은 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세상 밖으로 존재를 드러내었고, 존재 여부의 진위를 따지고 있을 무렵에는 이미 그들 모두와 함께하고 있었다.

이네인 스펠, 한마디로 증폭제와 비슷한 것이다. 유래가 그렇듯 과정 역시 실제로 증명된 바는 없지만,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동족의 피를 이용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엄격하고 신중한 성격 탓인지, 빈은 지금껏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불길한 형상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개 귀족에 불과했던 놈의 손에서 마주하게 되다니....

표정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당황한 그녀였으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린 빈은 재빨리 몸을 돌려 이브엔에게로 다가갔다.

"왜 그래?...."

이브엔이 물었고,

"상황이 안 좋아. 이대로면.... 너도 나도 모두 죽어."

빈이 답했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믿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더구나,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광경이 아닌가?

아직 누운 자세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브엔을 향해 빈은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을 내보인채 말했고, 이브엔은 그런 그녀의 답에 잠시 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가, 깨라고 만든 던전인지, 죽으라고 만든 던전인지 모르겠다. 이동 포탈 지역은 없고, 기껏 하나 있는 거대한 문에서는 반대로 사람이 튀어나오고....

애당초, 새로운 층이 문제였다. 이브엔은 평소 이벤트나, 패치 내용을 자세히 보는 편에 속한다. 게다가, 이 미궁 던전이 위치한 곳은 리베르타의 기초가 되는 중앙 대륙으로, 높아봐야 100 레벨대 플레이어가 서성이는 장소다.

그런데 별다른 패치 내용도 없는 중앙 대륙 미궁에 새로운 장소가 생성되고, 그 장소라는 곳에는 200 레벨대 언데드가 몰려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 미궁을 처음 클리어한 플레이어가 이브엔이었기에, 그런 의문이 더하면 더했지 줄지는 않았다.

"한번 죽을 수 밖에 없나...."

"뭐?"

그때, 빈의 표정이 사납게 변하며 이브엔을 바라보았다.

"방금 뭐라고......"

중얼거리는 수준의 작은 목소리였으나, 이브엔은 그 한마디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단순히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 뿐이다. 그렇기에 이브엔은 다시 한번 생각을 전하려했다.

하지만, 입을 막 움직이려는 순간, 돌연 빈이 이브엔의 멱살을 잡아채며 말을 끊었다.

"죽을 수 밖에 없어?.... 이제와서, 여기까지와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이브엔은 갑작스러운 빈의 행동에 그저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남의 목숨을 살려줄 때는 언제고.... 어떻게.... 어떻게.... 하나 뿐인 목숨을 그렇게 가벼이 여길수 있냔 말이야!"

빈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비록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몸이 가늘게 떠는 것을 보니 상당히 감정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브엔은 여전히 멱살을 잡힌채 가만히 있었다. 황당하면서도,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브엔은 무엇보다 그녀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의 가치관과 달라, 어딘가 맞물리지 않는 어색한 부분을......

"설마......"

그러던 중,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브엔은 문득 한가지를 떠올렸고, 이내 입을 열었다.

"대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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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1-21 17:41 | 조회 : 1,80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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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90802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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